Art Delight
Please, Draw Water
Lee Daechul
Dec 17, 2020-Jan 17, 2021
Art Delight
Hoenamu-ro 7, Yongsan-gu, Seoul




Installation View
<Please, Draw Water>, 2020~2021, Art Delight,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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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Draw Water>, 2020~2021, Art Delight,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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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Draw Water>, 2020~2021, Art Delight,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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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Draw Water>, 2020~2021, Art Delight,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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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Draw Water>, 2020~2021, Art Delight,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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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Draw Water>, 2020~2021, Art Delight,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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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Draw Water>, 2020~2021, Art Delight, Seoul


Installation View
<Please, Draw Water>, 2020~2021, Art Delight, Seoul




Works



Lee Daechul, <오늘도 사랑해>
2020, Steel, Lacquer Spray, Wood, Various Size


Lee Daechul, <The WoW>
2020, PVC, Lacquer Spray


Lee Daechul, <Someone like you>
2020, PVC, Lacquer Spray, 1,500x1,100mm


Lee Daechul, <Oh>
2020, PVC, Lacquer Spray, Gold Leaf, 850x750mm





The Uncertainty of Reality



최근 근대적 주체성에 대한 재고나 기존의 휴머니즘적 태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는 비단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성에 대한 지향과 같은 명시된 목표를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특히 현대 과학에서 증명하듯 우리는 무언가를 확정하고 규명하려는 것이 불가능한, 불확정성의 원리(uncertainty principle)의 체계 속에서 살고 있다.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는 양자역학을 기술하기 위해 ‘행렬역학(matrix mechanics)’을 고안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슈뢰딩거(Erwin Rudolf Josef Alexander Schrödinger, 1887-1961)가 말했던 파동역학과 같은 내용을 증명한 셈이 되었다. 이러한 과학적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가 이 세상을 설명할 때에는 그 무엇으로도 완벽하게 실재를 표현해낼 수 없다는 문제를 다시 한번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로트피 자데(Lotfi A. Zadeh, 1921-2017)의 퍼지이론(Fuzzy Theory)에서는 “인간의 애매한 표현을 처리할 수 있는 이론적 바탕을 제공”하는데 인간이란 존재 그 자체가 애매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 인식의 모호성을 논리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힘들다는 특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생각을 논리적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었다. 이는 다시 말해 퍼지이론에서는 애매모호한 인간의 언어가 얼마나 불명확한 경계를 내포하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다.

이러한 거창한 이야기를 하며 이대철 작가의 작업을 해석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작가의 작업에서 보이는 ‘불확정성(indeterminacy)’이 어떠한 예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결과가 결정되지 않고 여러 가지 경우의 수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측면을 설명하는데, 이러한 애매모호함은 단순히 상대성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많은 변수와 경우의 수를 가지게 된다. 이대철 작가의 작업에서 보이는 불확정성은 불가능함으로부터 오는 불확정적 비결정성이 아닌 그 의미를 규정하지 않고 관객과의 언어적 게임을 통해 그 경우의 수를 더 많이 만들고자 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상대주의적 해석을 살펴볼 수 있는데 조셉 마골리스(Joseph Margolis, 1924~)는 반본질주의적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에 속한 입장에서 “결정적인 실재란 외재적인 것이 아닌 인간 공동체에서 인지적으로 불투명하게 합의된 관행의 산물”이라 보았다. 특히 예술작품, 텍스트에 모두 인간의 문화나 현상들은 해석을 요청한다고 볼 수 있다.

이대철 작가가 붙여놓은 작품에서 우선 그의 작품에 숨겨진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작가의 작품을 구성하는 시각적 정보는 우리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제공된 언어적 기호이다. 그리고 친절하게 제목에는 그 언어적 기호들이 잘 조합되어 생길 수 있는 의미의 결과물을 제시하는데 그의 작업은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대철 작가는 이러한 단순한 규칙을 따르지 않고 작품 안에서 불확정적 태도를 유지한다. 그것은 작가의 작업에 대한 태도가 아닌 이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물러섬과 같은 태도이다.

이대철 작가는 영어의 알파벳,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평면 또는 입체적 방식으로 나열한다. 그런데 그 나열에는 겹침과 섞임을 포함하고 있고 여기서 단어가 조합되는 방식은 복잡성과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현재의 많은 예술이 본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되게 머리를 쓰게 하는 특징이 있지만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결과를 끝맺을 수 없는, 아직도 우리가 주관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어 보이는 틈을 작가는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결과의 복수성과 다의성만으로 단순하게 해석될 수 없다.

언어적 표현에서는 수치상으로 정확하게 그 정도를 나타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살아간다. 이를 듣고 해석해야 하는 상대방은 그 의미가 정확하게 같게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을 바탕에 깔고 대화를 하게 된다. “인간의 사유나 판단은 명증한 그것보다 오히려 확정하기 곤란한 경우가 더 많으므로, (중략) 이제 의미론이 자연언어에서 나타나는 의미를 온전히 탐구하기 위해서는 종래의 의미론적 체계와 다른 새로운 연구 방법과 분석 틀이 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구조주의 언어학은 언어구조의 독자성을 고수하여 언어의 외적 실재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언어를 다룬다는 태도를 근본으로 삼고 있다.” 특히 이러한 언어적 기호를 통해 수반되는 의미는 커뮤니케이션의 가능/불가능의 영역을 뛰어넘어 의미의 해석 이후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의미가 도래하면서 생기는 격차를 점차 넓힐 수 있다.

이대철 작가는 우선 존재하는 것이 시각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표현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고민하는데 이는 기호학적 형태와 그 의미 사이에 부유하는 비결정적 측면을 다룬다. 언어는 의미가 결정될 수 없고 의미의 완결을 계속 지연시키며 계속해서 실재가 규정되는 것을 멈추게 한다. 이는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형상 언어를 통해 비결정적인 의미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실험하는 것인데 여기서 상반된 의미가 교차하고 난해함의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작가는 문장이 구성될 수 있는 소스를 제시하지만, 이것은 막상 관객이 그 단어들을 잘 조합해서 문장을 만들지라도 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그것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노력을 멈출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존재를 형언하고 나타내는 데에 있어 완결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러한 태도를 작업 방식으로 사용하며 조형적인 시각적 작품을 시간성으로 치환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대부분 감정 표현에 기초한 단어이거나 ‘너’와 ‘나’의 자리가 바뀌게 되면 그 뜻이 정 반대가 되는 상황을 나타내는 것들이다. 작가는 이렇게 ‘감정’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정의할 수 없는 지점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사랑’, ‘LOVE’라는 단어는 그것을 비유할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언어적 방식이 존재하지만, 그것 자체가 무엇인지는 결코 합의할 수 없는 이야기를 담는 단어이다. 작가는 겹침과 중첩을 통해 평면처럼 존재하는 단어들을 제시하며 그 의미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것이 비록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결국 정의하는 것이 허무한 것임을 보여준다.


김주옥(전시기획 및 미술비평, 홍익대학교 예술대학 겸임교수)




The visual information that composes the artist's work is a linguistic symbol provided to the extent that we can understand it. And kindly, in the title, the result of meaning that can be produced by combining the linguistic symbol well is presented, and his work starts from this point. Lee Dae Chul does not follow the simple rules and maintains an uncertain attitude in his work. It is not the artist’s attitude towards his work, but of his point of view towards the world.

The artist first ponders the question of how – what exists can be visually represented and expressed, which deals with the non-deterministic aspect floating between the semiotic form and its meaning. Language cannot determine meaning, it continues to delay the completion of meaning, and continues to cease to define reality. To borrow from the artist’s expression, this is an experiment on how non-deterministic meanings are formed through image language, where contradictory meanings intersect, and conflict of difficulty occurs. The artist presents the source from which the sentence can be composed, but this is because even if the audience makes a sentence by combining the words well, it is impossible to know whether it is the author's intention and cannot confirm it. This can be seen as the same reason that perfect completion does not exist in expression and expressing invisible existence. However, the artist uses this attitude as his method of work and replaces formative visual works with temporality.

Also, the English alphabet and consonants and vowels of Korean are arranged in a flat or three-dimensional manner. However, in the arrangement includes overlapping and mixing, and the way words are combined here implies complexity and diversity. Of course, many artworks today have the characteristics of arduously stimulating the viewers’ minds, but despite doing so, the artist creates a gap that still has room for us to interpret subjectively. have. And this cannot be simply interpreted as versatility of the results. As such, in this exhibition, these ideas are shown once again through plane figures, three-dimensional, and installation works. By presenting words that exist as an image through overlapping and piling, the artist shows that it is impossible to try to explain its meaning and at the same time even if it is possible, it is impractical to define it in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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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rs: Monday–Saturday 10–6

Director
Kim Juok

Artist
Lee Dae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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